"사진은 찍는게 아니다, 만드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외친다
한성필·고상우 개인전
사진에 진짜같은 그림 그려 넣고 필름상 색깔을 그대로 인화지에…
디지털 카메라 보편화 된 후 작가들 생존 고민 더 치열해져
조선일보 | 곽아람 기자 | 입력 2011.04.19 03:22 |
사진가 한성필(39)은 2009년 무렵부터 건물의 벽에 그려진 트롱프뢰유(Trompe l'oeil)를 찾아 프랑스 전역을 헤맸다. '트롱프뢰유'란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눈속임 그림'. 문이 있어야 할 곳에 극사실주의적으로 문을 그려 넣어 사람들이 진짜 문으로 착각하게 하는 것이 한 예다. 내달 8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회 '듀얼 리얼리티(Dual Realities)'에 나온 작품 'Fable & Fairy Tale'(우화와 동화)은 2009년 겨울 파리 교외의 어느 건물 뒷벽에 그려진 봄의 정원을 찍었다. 눈 쌓인 실제 겨울 거리와 그림 속의 따사로운 봄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초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한성필은 "일몰 직후 막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을 때나 일출 직전에 사진을 찍으면 자연광과 인공광이 어우러져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보수공사 중인 건물을 덮은 가림막 중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한 것들을 주로 찍어온 한성필은 이번엔 프랑스의 건물벽에 그려진 트롱프뢰유 작품으로 대상을 확장했다.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들'은 한성필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내달 8일까지 서울 소격동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고상우(33) 개인전 '프리티 파워풀(Pretty Powerful)'에는 푸른색 나신에 붉고 노란 꽃들을 그려넣고 춤추는 발레리나를 담은 'Lady Liberty' 연작이 나왔다. 고상우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스캔 과정에서 필름을 반전시켜 필름상의 색깔이 그대로 인화지에 찍히도록 했다. 그 결과 중국인 발레리나의 살갗은 푸른색으로, 보라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은 금빛으로 찍혔다. 고상우는 "네거티브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 필름상에서 살구색처럼 불그스레한 동양인의 살빛은 중간 청색으로 나온다. 인화한 필름을 햇빛에 비춰보며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푸른색 얼굴을 들여다보던 디지털 카메라 시대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특한 대상'을 촬영하거나 '독특한 기법'을 이용한 사진이 쏟아지는 것은 디지털 카메라의 보편화 이후 사진계의 추세다.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사진전 '오래된 풍경-능, 삼국유사, 경주남산'을 열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운구는 "디지털이 기술을 민주화시켰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이 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트레이트 사진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에 대해선 우려의 시각도 있다. 사진가 구본창은 "옥션과 화랑의 입맛에 맞춘 팝아트적인 사진에만 초점을 맞추다 젊은 작가들이 방향성을 잃는 경우도 있다"면서 "연출로는 불가능한 감동의 다큐멘터리 사진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한성필 사진전 'Dual Realities', 내달 8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02) 723-6190
▶ 고상우 사진전 'Pretty Powerful', 내달 8일까지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02) 720-5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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