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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元老에 길을 묻다 <8> 최민식 사진작가
이름: 노상권 * http://sajinanolja.com


등록일: 2016-03-29 12:29
조회수: 837 / 추천수: 293


元老에 길을 묻다 <8> 최민식 사진작가
"가난한 자와 나누는 것이 행복한 삶이지"
인간에 천착 반세기 '한우물'
카메라를 도구로 평화 전파, 시대 좇기보다 자신의 길을. 끈기·열정 있어야 발전 가능

사진작가 최민식(80) 씨는 1957년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래 50년 동안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필름에 담아왔다. 그래서 카메라를 둘러멘 성자(聖者), 사진으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한 예술가, 시련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 삶의 존엄성을 일깨워준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인간, 그 아름다운 이름' 이 지난 19일까지 용두산 미술전시관에서 열렸다.

'방랑'의 사진작가 김홍희(48) 씨가 그를 만났다. 김 씨는 "50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최 선생님은 우리나라 사진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대가"라고 말했고, 최 씨는 "'사진이 무엇인가' 묻는 것은 '인생은 무엇인가' 묻는 것과 같다"면서 "인간을 찍겠다는 삶의 좌표를 설정하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이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홍희 씨=여든이신데 체력을 지키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최민식 씨=많이 걷고 하는 일에 만족하니 건강에 무리가 없습니다. 저는 자동차도 없고 컴퓨터도 잘 모릅니다. 하루에 범일동에서 온천장까지 5만 보 정도 걷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일에 몰두하면 작품이 나와 기쁘고, 기쁘면 작품에 열중할 힘을 얻어 좋고, 그렇게 보냅니다. 건강은 타고 난 것 같습니다.

김=선생님은 평생 가난과 싸우신 사진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 쉬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담아내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 됐습니다. 예술로 가난을 퇴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나는 어려서부터 가난을 겪었고 성장하면서도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체험을 사진으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인간 중에서도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렌즈에 담아왔습니다. 헐벗고 못먹고 못배웠지만 삶의 의지와 욕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내 주된 관심사였죠. 나는 그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사람을 찍었죠. 그 모습을 보고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뀌길 바랐습니다. 사진이 가난을 직접 퇴치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직접 돈을 줘서 도와주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나누고 봉사하는 자세가 중요하겠죠. 사람들을 반성케 하고, 서로 도와주고 나누고 봉사하자는 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사진의 역할입니다.

서민들이 행복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평범한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찾아와 5만 원 짜리 사진집을 구입하더라고요. 자식들에게, 고아원하는 친척에게 보여주기 위해. 서민들은 이런 정신으로 책을 삽니다. 단지 소장하기 위해 사는 사람보다 떳떳하게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사진집을 구입해 너무 행복했습니다. 예술한답시고 사진하는 사람 나의 사진집 사지도 않고, 초청장 보내도 오지도 않습니다.

김=선생님의 따님이 "아빠는 남의 가난을 팔아 유명해졌다"고 한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 문제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최=내 딸이 언젠가 "아버지는 자신의 예술과 명예와 이익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며 야속하게 따진 적이 있습니다. 어린 마음에 너무 매스컴타니깐, 딸이 방송국에서 오는 전화도 끊어 버렸죠. 남들은 조용히도 하는 데 너무 매스컴 타는 것 아니냐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커서는 이해하는 것 같더라구요. 내 피붙이가 이런 의혹을 품으니, 내 진정한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회의한 적도 있지만, 결코 내가 택한 길을 후회하거나 내 뜻의 진정성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김=선생님 사진에는 소외된 사람에 대한 연민과 폭로성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심이나 호기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분노의 사회고발입니다. 당신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개인일 뿐이지만 당시를 상징하는 시대의 인간으로 부각됐습니다. 하지만 케케묵은 인물사진을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 정부에서 압력을 많이 가했습니다. 내 사진이 해외에 소개되자 "왜 이 따위 사진을 찍어서 나라 망신을 시키느냐"는 집요한 협박과 방해에 시달렸죠. 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도구로 삼아 평화를 전파하려고 했습니다. 대공황 당시 다큐멘터리 사진보고 내 방향은 이것이라고 생각했죠. 내 사진은 직감적으로 바로 느낄수 있고, 가식이 없고, 사실성이 넘친다는 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힘을 얻었고 지금까지 밀고 나왔습니다. 저는 '인간이 거기 있기'에 셔터를 눌렀습니다. 나는 계속 걸었고,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 있었습니다.

자신이 갈 길을 찾는 것은 좋은 데 남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최근 몇 몇 교수들이 케케묵은 사진하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불만입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는 있겠죠. 요즘에는 데이터 조작해 사진 만드는 작가가 많습니다. 카메라는 셔터 누르면 끝입니다. 사진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찍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 저의 사진철학의 출발점입니다.

김=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에 아직도 아날로그 필름을 쓰고 계십니다. 주위에서 카메라 바꾸라고 하시지 않으시던가요.

최=필름 제조가 중단되지 않는 한 그대로 계속할 것입니다. 흑백사진은 필름이 최고입니다. 직접 집에서 현상하고 인화합니다. 현재 니콘 카메라를 주로 쓰고, 최근 중고 라이카도 구입했는데 가격이 상당히 내렸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아날로그 카메라 판다고 난리인데 오히려 구입하니깐 주위에서 놀라더라고요. 시대를 좇아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나만의 고집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요.

김=삶의 보람과 가치는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시대, 젊은이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최=제발 책 좀 열심히 보고 봉사, 나눔의 정신을 가지길 바랍니다.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야죠. 벌어서 가난한 자와 나누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요즘은 너무 개인주의가 팽배해 자기밖에 모릅니다. 젊은이들이 제 사진을 보고 짜릿한 감동을 느껴 생을 되돌아 보는 마음을 갖길 간절히 원합니다. 얼마전 전시회에서 어떤 젊은이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베트남서 찍어왔느냐'고 하길래 호통을 쳤습니다.

김=오늘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또 자신의 세계를 천착하는 노력도 부족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같아 아쉽습니다. 선생님은 후계자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 우리가 흔히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고 믿는 천재들은 사실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천재였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입니다. 사람이 뛰어난 업적을 세우려면 정열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건 동서고금을 통해 바꿀 수 없는 진실입니다. 게을러선 결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부지런한 사람만이 학문에서든 예술에서든 사업에서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천재가 아니었기에 더 노력해야 했고, 더 이를 꽉 깨물어야 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우연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거기에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피와 땀이 서려 있게 마련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찍는 것이 너무 힘들고 당장에 빛이 나는 장르가 아니라 제자들을 길러 내지 못했습니다. 가난을 이겨내며 끈기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젊은이가 부족해 안타깝습니다.

김=예술이 밥먹여주기 힘든 시대에 50년을 버티셨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최=남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반추해 보니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묵묵히 고집대로 해왔습니다. 35년 정도 하니깐 인정받고, 궤도에 오르니 후원자가 생겼죠. 최근에는 정부에서 주는 원로예술가 보조금을 15년 전부터 60만 원 받고 있고, 무공훈장 포상금도 매달 15만원 받고 있습니다. 이게 밑천인 셈이죠.

오는 12월께 후원자들이 자금을 마련해 줘 방글라데시에 3주간 체류할 계획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나왔는데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찍을 것입니다.

대담=사진작가 김홍희

# 약력
◇최민식
△1928년 황해도 연안 출생 △1957년 일본 동경중앙미술학원 졸업. 이후 독학으로 사진연구 △1968년 사진집 '인간' 1집낸후 2004년까지 12집 출간 △사진선집 '우먼','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저서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리얼리즘 사진의 사상' 외 △1970년부터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7개국에서 15회 개인초청전

◇김홍희
△1959년 부산 生 △1985년 도일 △1989년 도쿄 비주얼아트 학생으로 니콘 살롱, 올림푸스홀에서 개인전 △사진집 '세기말 초상'(1999) △'한국의 예술선 2000' 선정(2000년) △포토에세이 '방랑'(2002년) '나는 사진이다'(2005년) △현 동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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